| 불혹을 맞은 한국 애니메이션. 40년 역사 속 손꼽히는 명작의 뒷얘기를 명장에게서 들어봅니다. -편집자 주 |
“모두가 백안시하며 되겠느냐 의심하던 때 ‘태권브이’가 가능성을 지폈던 것처럼 지금 또 애니메이션산업이 힘들 때 30년만에 다시 가능성의 불을 피웠다는 것, 내가 생각해도 참 신기해.”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에서 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꿈을 옮긴 화면 속에서 다시 느끼고 싶은 것은 무얼까. 그 명백한 해답 또는 가능성을, 지난 1월 김청기 감독은 새삼스레 다시 경험했다. 마음속 ‘울림’을 안겨주는 애니메이션의 힘에 대해.
‘로보트태권V’, 이렇게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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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6 Robot Taekwon V co., Ltd. Allright reserved) | 1975년 11월, 충무공 동상이 내려다보이는 광화문 한 스튜디오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애니메이터 열서너 명, 선화 담당이 너댓 명 그리고 컬갭?담당이 열두엇쯤. 기성, 학생을 가리지 않고 한국의 디즈니가 되겠다는 열망 하나로 그들은 ‘작업’을 시작했다. 세계 최초 로봇무술애니메이션 <로보트태권V>의 시작이었다.
“애니메이터가 되지 않았더라면 아마 기계 쪽으로 나갔을” 만큼 기계에 대한 ‘로망’이 컸던 김청기 감독은 당시 선풍적 인기를 누리던 ‘그레이트 마징가’와 같은 로봇에 우리의 전통 무술 태권도를 도입한 조항리 원작 만화에 마음이 끌렸다.
자신있었다. 그리고 묘하게도 자신감을 일으키는 것은 다름아닌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일본 것을 보면서 자신감을 얻었어. 단지 스토리에 삽화를 이어붙인 듯한 느낌이었거든. 하지만 풀애니메이션, 다시 말해 한 동작만이라도 리얼하게 감정과 코믹을 전달하는, 만화영화만이 갖는 맛을 살려낼 수 있다면 성공할 수 있겠다 생각한 거야.”
그 유려한 테크닉의 모방대상은 디즈니였다. 김 감독이 애니메이션계에 투신하게 된 계기도 1960년대 봤던 월트디즈니의 <피터팬>, <백설공주>였다. 물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움을 얻기 위해 디즈니를 연구했다. 동작의 리얼리티를 위해 유단자를 대련시켜 필름에 캐릭터를 직접 입혔다(‘오토스코핑’ 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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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당시 디자인의 한계로 그레이트 마징가와 닮을 수밖에 없었던 태권V는 후에 이순신 장국의 모습을 가미, 재제작됐다(1976 Robot Taekwon V co., Ltd. Allright reserved) | 의욕과 욕심이 넘치는 만큼 밤샘과 합숙도 연일 이어졌다. 본래 12000매면 충분했을 필름작업이 38000매까지 늘어났다. 필름비용만 전체 제작비의 10% 이상을 차지했다고. 투자에 대한 개념조차 요원했던 그때, 김 감독은 집을 잡고 돈을 구했다.
“무모했지.(웃음) 그렇지만 고맙게도 함께 시작한 인력 누구도 빠져나가지 않고 마지막까지 함께했어. 사실 우리 모두에겐 희망, 확신이 있었어.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프론티어가 되겠다는 공통분모가 있었거든. 힘들었지만 무모하기만 한 도전은 아니었어. 지금 이렇게 태권V가 남아 있으니까.”
단순히 있는 만화스토리를 움직이게만 하는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 드라마, 퀄리티, 전반적 스토리텔링 등 어느 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쏟아부었다. 비슷한 색감을 가진 거대 로봇물 ‘마징가’와 유사하다는 평가를 들을 때면 속이 상했다. 설령 베낀대도 따져들 법령마저 없던 때였지만 ‘작가적 양심’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차라리 그때 난 일본문화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했어. 만들고보니 아류작이니 하는 여러 말이 나왔는데 그게 참 부끄러운 일이지만 한편으론 한계야. 실력의 한계. 실력이 있었다면 완전히 다른 모습의 로봇이 나왔겠지. 그때 우리 디자인 실력으로는 마징가에 영향이 없다고 할 순 없어. 색채에 대해서도 당시 블랙이 셀에 가장 잘 묻어 유용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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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년 전 개봉 당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