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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 예술과 멀티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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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10-13 00:00 조회 4,13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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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 예술과 멀티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의 방향
2006-09-28
1984년, 세계 문화계에서 일어났던 3가지 화제는 20년이 넘은 지금에도 우리에게 생생하게 다가온다. 바로 소설가 조지 오웰,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 비디오 예술가 백남준이 그 주인공들이다. 짧게나마 이들이 추구한 테크놀로지 예술의 지향성을 비교하여 향후 하이테크 예술의 방향성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은 1948년에 공포의 미래소설인 <1984년>(Nineteen Eighty Four)을 발표하였다. 여기서 그는 인간이 ‘빅 브라더(Big Brother)’라고 하는 ‘기계문명’에 의해 감시당하고 지배되?현대사회의 전체주의 경향이 도달하게 될 종말을 비관적으로 경고하였다.

그 이전에 그는 스탈린주의를 비판한 정치풍자소설인 <동물농장>(Animal Farm, 1944)을 통해 독재체제를 비판하였다. 이 두 작품의 공통점은 개인의 이익보다 전체의 이익을 중시하는 전체주의 사회의 해악성을 비판했다는 점과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통제의 전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애플 컴퓨터의 창립자 스티브 잡스(Stieves Jobs, 1955~)는 1977년 워즈니악과 함께 ‘최초의 퍼스널 컴퓨터(PC)’인 ‘애플Ⅱ’를 선보였다. 이후 1984년에 영화 <에일리언>(Alien, 1979)과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1982)를 감독한 리들리 스코트(Ridley Scott)를 통해 경쟁사인 IBM에 대항한 광고 캠페인인‘1984년의 빅 브라더스’를 전개했다. 여기서 그는 ‘빅 블루’(Big Blue : IBM의 별칭)라고 불리는 IBM을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에 적용시켜 혐오와 두려움의 부정적인 대상으로 묘사하였다. 광고는 “1월24일, 애플 컴퓨터에서 매킨토시가 출시됩니다. 우리의 1984가 그들의 1984와 다른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끝이 난다.

이로 인한 애플의 브랜드 효과는 시청률이 가장 높은 ‘슈퍼볼’(super bowl) 시간에 TV광고를 함으로써 지금까지 가장 위대한 광고 중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비록 1985년에 자신이 세운 IBM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지만, 픽사를 인수해 최초의 3D 장편 애니매이션 <토이 스토리>를 성공시켰고, 이후 <벅스 라이프>,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인크레더블>을 히트시키면서 가장 성공한 할리우드 영화사의 주인공이 됐다.

현재는 애플로 다시 복귀해서 "아이포드"(iPod)를 출시함으로써 MP3 플레이어 시장을 휩쓸고 있다. 그의 천재성과 혁신적인 기질은 복잡한 기술들을 세련되면서도 단순하게 융합시킨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1984년 새해 아침에 전세계 주요 방송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인공위성을 이용한 TV쇼인 "굿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rwell)"을 연출함으로써 조지 오웰의 비관적 예언을 낙관적 가능성으로 승화시켰다.

2000년도에 그는 한국의 DMZ에서 2000년 기원제를 전세계 위성을 통해 방송하였다. 그는 “발달된 맨閨茱珦?전세계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새로운 밝은 세상을 만들 수 있게 하였다”고 언급하면서 TV가 ‘독재와 압박의 수단’이 아니라 ‘자유와 표현의 수단’임을 증명하였다.

1963년에 TV를 오브제로 사용한 최초의 개인전 ‘Exposition of Music-Electronic TV’를 열어 비디오 아트를 창시한 백남준은 예술가, 관객, 작품이 모두 하나가 되기를 원하였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퍼포먼스’, ‘설치작업’, ‘비디오 아트’, ‘위성방송 프로젝트’ 등을 통해 관객과의 거리를 좁혀나갔다. 최근에는 레이저 빔, 레이더 등의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예술세계에 접목시켜 20세기 미술의 정의를 확장시키는 등 문화과학의 한 패러다임을 이루어가고 있다.

이들은 동시대에 살면서 미래의 종말을 비관적 운명으로 노래한 노스트라다무스와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일상에서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낙관적 철학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조지 오웰의 ‘비관적’이든 백남준의 ‘낙관적’이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선택과 실천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백남준은 미래의 가능성을 이상으로만 설파하지 않고 고희를 넘은(73) 지금까지도, 더욱이 1996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몸의 왼쪽 신경이 마비되었음에도 새로운 매체와 기술을 탐구하고 실험하는 실천예술을 보이고 있다.

백남준은 TV란 생활의 도구일 뿐 아니라 기술적 체계이자, 과학이며, 예술적인 실험의 장으로써 그 속에서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모든 사물이 창조와 재창조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즉, TV가 상업적인 오락제공의 기능만을 수행할 때, 관람자와 TV와의 관계는 수동적인 것이 된다.

그러나 백남준은 TV를 활성화된 양방향 교류의 잠재력을 지닌 의사소통 수단으로 보고, 관람자가 TV라는 전자매체에 직접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정치, 사회, 경제 그리고 문화적 측면에서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그 표현과 양식에서 변화를 보인다 해도 항상 관객과의 상호소통을 이루는 참여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는 백남준의 비디오 이상이며, 이념이다.

<참여 TV>(1966-71), <자석 TV>(1965), (1974), <비디오 부처>(1976-78) 등이나 1980년대의 위성작품들, 그리고 형식주의 국면의 비디오테이프 작품들은 색다른 이미지의 효과로 관객의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은 테크놀로지를 인=화하고, 관람자들에게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그는 자연, 예술, 테크놀로지를 결합하기 위해 자연 배경 속에서 비디오와 레이저 설치작품들을 배치하였다. 자연은 테크놀로지와 상업주의에 대한 은유(metaphor)가 될 수 있다.

(1974)은 TV의 보급에 대한 은유로써 성장과 변화, 그리고 자연과 테크놀로지라는 대립되는 개념을 설명하고 있으며, <실제 물고기/생방송 물고기>(1982)는 ‘가상의 실제화’, 즉 실재하는 것을 허구적으로 재창조하되 촉각, 청각, 시각, 후각까지 동원하여 일상생활 속에서 자극 받는 방식에 의한 허구와 실제의 차이점들에 대해 성찰하고 있다.

디지털 융합과 유비쿼터스 시대로 전환하고 있는 요즘, 문화의 형태도 종래의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문화에서 테크놀로지에 의한 퓨전 문화로 전환되고 있다.

퓨전 현상은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고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기호가 점점 세분화, 전문화되면서 사람들의 소비성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단순 방식보다는 다양한 차원에서 접근이 필요하다는 시각에서 시도되었다.

특히 현대의 문화는 ‘미디어 문화’라 할 만큼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유선과 무선이 통합되는 광대역통합망(BcN), 방송·통신·컴퓨터·정보가전이 어우러지는 다매체·다채널화, 휴대폰·모바일폰·PMP 등 이동형 단말기 등이 융합화·복합화하면서 고도로 진화하고 있다.

향후 테크놀로지는 예술 매체로서 커뮤니케이션을 형성하기 위해 매체환경 그 자체에 한정되거나 미적 효과만을 양산하는 것에서 벗어나 인간과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적 기능으로 나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기술변화의 원인과 결과는 사회현상과 관련을 맺기에 기술과 사회는 서로 독립되기보다는 서로 조건지우고 상호작용하며 공진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의 모든 예술은 관객의 메시지가 예술작품 속에 어떻게 반영되는가에 따라 예술의 사회성이 결정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베네통 광고의 사진작가 토스카니는 광고의 경제적 효과보다는 비주얼 충격으로 사회의식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SF영화 역시 반과학적이든 신과학적이든 ‘디스토피아를 유토피아’로 만들자는 캠페인 영화라 할 수 있다.

현대 예술은 예술을 하나의 소모품으로 보려는 일시성, 예술작품을 순수한 효과 또는 이벤트로 접근하려는 개방성, 삶에 대한 현실성으로부터 비롯되는 사회성, 예술을 근엄한 관계로부터 떼어내려는 유희성 등으로 그 특징이 집약된다.

그래서 오늘의 예술은 대상보다 기능에 더 중점을 두고 관객과의 직접적이고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재통합됨으로써 ‘인간을 위한 예술’ 또는 ‘대중의 예술’로 규정된다. 이는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 1895-1985)가 <예술과 기술>(Art and Technics)에서 기술과 예술의 문화적 통합을 얘기하면서 예술은 인간 개성의 모습을 가장 충실하게 옮겨주는 기술의 일부이고, 기술은 기계적 과정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인간성의 대부분을 배제시킨 예술의 표출이라 역설한 점에서 백남준의 미디어 예술관을 뒷받침해 주는 근거가 된다.

인간은 욕망을 형성하고 실현하는 존재로 취향과 성향에 따라 지식을 활용하여 기술을 향상시키거나 개발함으로써 양질의 문화생활을 영위하여 왔다.

예컨대, 3D 입체영상기술은 인간의 오감 전부를 자극할 수 있어 인간으로 하여금 보고 듣고 만지며 냄새까지 맡게 할 수 있으며, ‘실감 공간(tangible space)’ 기술은 가상공간에서 실제상황을 재현하거나 경험할 수 있게 함으로써 공감각적인 ‘멀티 욕구’를 가능케 <고 있다.

오늘날 CT에 기반한 개인 맞춤형 문화(on demand culture), 이동하면서 콘텐츠를 즐기는 손 안의 문화(hand held culture), 언제·어디서나 지능형 서비스가 가능한 유비쿼터스 문화(ubiquitous culture)는 시·공간성을 초월하려는 ‘유희적 인간(homo ludense)’의 욕구 확장과 해방의 모습이다. CT와 같이 창의성 높은 신생 기술(emerging technology)은 향후 하이테크(high-tech)를 기반으로 인간 감성에 친화되는 하이터치(high-touch), 인간중심의 인터페이스를 추구하는 HCI(Human-Computer Interaction)와 연계되어 고도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미디어에 의해 현실(실사)과 가상(모사)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고, ‘일상의 현실성 또는 사실성’마저 위협받고 있지는 않은가?

예컨대, 몰래카메라, 불법 도·감청 등은 우리의 일상적 확실성도 미디어에 의해 노출·왜곡됨으로 일상 자체도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는 불확실성을 내재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미디어 테크놀로지에 의한 문화예술이 대중적으로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문화를 수용하는 소비자와 표현하는 예술가, 그리고 담아낼 수 있는 문화매체적 환경요인이 상황에 맞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문화의 형식과 내용에서만의 혼합이 아닌 새로운 문화양식의 창조물로서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문화를 표현하고, 수용하고, 유지함에 있어서 바람직한 방향은 문화 기술(CT)이라는 기술중심보다 인간 중심적인 자세가 필요하며, 문화 속에서 인간을 보고, 느끼고, 사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인간이 왜 그토록 문화를 향유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출  처 :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노준석)
충남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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