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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적인’ 색에 눈을 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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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10-13 00:00 조회 4,10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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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적인’ 색에 눈을 뜨다
2006-09-28
[링링의 세계애니메이션] 중국 6-1950년대 후반(1956~1959) 작품들

상하이 제작소가 정식으로 건설된 1957년도부터 1959년, 애니메이션 제작소에 유능한 인력들이 증가하였고, 제작기술도 많은 발전이 있었으며, 작품 생산량도 몇 배나 증가했다.

이 시기에 중국 애니메이션이 발달하게 된 데는 전쟁 후 재건사업으로 안정된 사회의 분위기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었다.

이때는 중국 ‘대약진(1958년 중국 정부가 추진한 경제성장정책을 말한다. 제2차 5개년 계획이 시작된 1958년 마오쩌둥에 의하여 제기된 경제성장을 위한 전국적인 대중운동이다.

대약진 운동을 계기로 중국은 제2차 5개년 계획의 첫해인 1958년 농공업생산 총액이 전년 대비 48퍼센트 증가 했다고 했으나, 이러한 성장지수는 상당 부분 과장된 것으로 이후 대약진은 실패를 하였다)’ 시기로 1957년 문화부에서 ‘인민에 해가 없는 내용이라면 어느 소재나 내용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수 있으니, 애니메이션 생산을 증가하라’는 결정이 정해졌다.

표현이 자유가 좀 더 많아진 애니메이션계는 조금씩 날개를 펴 1966년 문화혁명 전까지 물 만난 고기처럼 활발한 창작 활동을 했다.

일부 학계에서는 1956년부터 1966년까지를 제1 번영기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작품의 경향으로 좀 더 세분화 한다면 자체개발단계가 지나고 나서 번영기를 맞이했다고 할 수 있겠다.

자체개발단계인 1955년에서 1959년 사이에 중국 애니메이션은 ‘중국적인’ 개성이 점차 진해지기 시작했다.

중국 각 소수 민족의 설화나 신화가 소재로 등장하기 시작했고, 중국 민간에서 즐기던 그림자극과 종이를 오리거나 접어 장식으로 쓰였던 종이 공예 예술 등이 애니메이션의 제작 방법에 새로운 장을 열기도 했다.

이 시기는 중국 애니메이션?제1차적 만개를 위한 준비 단계이기도 하다. 조심스럽지만 새로운 시도나 소재가 조금씩 등장했다.

<거만한 장군>(1956)

중국애니메이션의 ‘중국학파’를 만든 작품 중 하나다. 상하이 제작소에서 1956년에 만든 작품으로, 감독은 터웨이(特偉) 그리고 리커루어(李克弱)다.
이 작품은 30분 정도의 단편 애니메이션이었지만, 관객들에게 중국적인 애니메이션의 첫 장을 열어준 작품으로 이후 ‘중국학파’라고 불리는 애니메이션 제작이 가속화됐다.

<거만한 장군> 제작팀은 중국적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베이징(北京), 산둥(山東), 허베이(河北)을 돌아다니면서 옛날 그림, 조각, 건축물, 민간 예술활동 등을 보고 자료를 수집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거만한 장군>에는 중국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 있는데, 얼굴 분장과 동작, 음악 또한 경극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있다.

옛날 무예가 뛰어난 장군이 있었다. 그는 활쏘기며 칼싸움까지 못하는 것이 없었으며, 힘 또한 장사였다. 전쟁에 나갔다 하면 백전 백승인 이 장군에게 맞서는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너무 거만해져 더 이상 무예 연습도 하지 않고, 먹고 N시며 놀기만 했다. 몇 달이 지나자 장군의 몸은 뚱뚱해졌고, 쓰던 무기는 다 녹슬고, 쥐가 갉아먹어 망가져 버렸다. 마침내 적이 쳐들어왔지만, 거만한 장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붙잡히고 만다.

<신선 붓>(1955)

상하이 제작소에서 1955년에 만든 작품으로, 감독은 진시(靳夕)다. 중국에서는 처음으로 국제 애니메이션 축제에서 상을 가장 많이 받은 작품이자, ‘중국학파’를 만든 작품 중 하나다.

1956년 이탈리아 제8회 베니스 국제 어린이 영화제에서 어린이 문예오락 부분 1위, 시리아 공화국 제1회 국제 영화제 단편 부분 은상, 유고슬라비아 제1회 국제 어린이 영화제 우수상, 폴란드 제2회 국제 어린이 영화제 특별 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어느 마을에 가난하지만, 공부하고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소년이 있었는데 어느 날 소년은 꿈속에서 신선 같은 할아버지를 만난다. 할아버지는 소년에게 붓 한 자루를 주면서 이 붓으로 그린 그림은 실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꿈에서 깬 소년은 곧 그 꿈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소년이 붓을 사용해 생활하는 것을 알게 된 관에서는 곧 소년을 잡아가 금산을 그리라고 한?

소년은 꾀를 써 금산 사방에 바다를 그리고, 배를 그려 놓는다. 현관(고을의 사또 같은 사람)이 배를 타고 금산에 간 사이 소년은 바다에 파도를 일으켜 물에 그를 빠뜨린다. 악독한 현관이 없어지자 마을 사람들은 기뻐하고 소년도 행복하게 잘 산다는 이야기다.

<까마귀는 왜 검을까>(1955)

상해 제작소 1955년 작품으로 중국 최초의 컬러 애니메이션이다. 감독은 치엔지야준(錢家骏)과 리커루어(李克弱)다. 10분 정도의 단편인 이 애니메이션은 1956년 제8회 베니스 국제 어린이 영화제에서 입상했다.

숲 속에 오색 찬란한 깃털을 가진 새가 있었다. 목소리 또한 아름다웠던 그 새는 자신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 항상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일 자신의 깃털을 뽑내고, 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와서 다른 새들은 다들 겨울을 대비해 먹을 것을 모으러 다니는데 아름다운 새는 노래하고 춤추며 자신을 뽑내기에만 열중했다.

겨울이 오자 다른 새들은 모두 집에서 따뜻하고 배부르게 지내는데 아름다운 새만 배가 고파 먹이를 찾으러 돌아다녔다. 그러나 아무 찾孤?먹을 것은 없고, 몸은 추워서 덜덜 떠는데,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불꽃이 있는 게 보였다.

아름다운 새는 몸을 녹이기 위해 불 가까이로 갔고, 너무 가까이 갔다가 그만 온몸의 깃털이 다 타서 흑색으로 변해버렸다. 목소리 또한 이상해진 새는 더 이상 ‘아름다운 새’가 아니라 ‘까마귀’라고 불리게 됐다.

<지혜로운 양>(1956)

상하이 제작소 1956년도 출품작으로 완차오진(萬超尘)이 감독한 작품으로, 1958년 루마니아 제1회 국제 모델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자유롭게 살던 산양이 어느 날 잘못해서 호랑이 굴에 들어가게 되는데 동굴 안에 호랑이가 들어오자 어둡고 소리가 울리는 동굴을 이용해 자신이 더 무서운 동물인 척 호랑이를 속여 위기에서 벗어난다는 이야기다.

<수박 먹는 저팔계>(1958)

상하이 제작소 1958년 작품으로 중국 최초의 지엔즈 피엔(剪紙片)(컷 아웃 애니메이션)이다. 감독은 완구찬(萬古蟾)으로, 20분 길이의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서역으로 가던 손오공 일행은 어느 날 인적이 없는 곳에 이르렀다. 모두들 지치고 배가 고프자 스승이 앉아 쉴 때를 마련하뎬?손오공과 아우들이 먹을 것을 구하러 나섰다. 얼마 못 가 저팔계가 배가 아프다며 주저앉자 손오공은 저팔계를 쉬게 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꾀병으로 혼자 쉬게 된 저팔계는 좀 떨어진 언덕에 수박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혼자 수박을 다 먹어 버린다. 먹을 것을 구해오던 손오공이 이를 보고 주문을 걸어 저팔계를 골려주곤 저팔계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는 내용이다.

<용문으로 간 잉어들>(1958)

상하이 제작소 1958년도 작품이다. 허위먼(何玉門)이 감독한 20분 단편 애니메이션. 1959년 구 소련의 제1회 국제 영화제에서 애니메이션 부문 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조그마한 강에 잉어 한 무리가 살고 있었다. 어린 잉어들은 할머니 잉어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좋아했다. 그 중에서도 조상 잉어들이 용문에 뛰어 들어간 이야기를 아주 좋아했다.

이야기에 의하면 용문을 뛰어 넘어 들어간 잉어는 거대한 용으로 변한다고 했다. 어린 잉어들은 자신들도 커서 용문을 넘어 들어가 용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고, 세월이 흘러 청년이 된 잉어들은 할머니 몰래 용문을 찾아 나서게 된다.

갖은 고생 끝에 용문을 찾게 된 잉어들은 뛰어 넘으려고 노력하나 넘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제일 큰 잉어가 작은 잉어를 던져서 용문을 뛰어 넘게 해주었다.

그러나 막상 용문 안에 들어와도 잉어들은 용으로 변하질 않았다. 알고 보니 그곳은 이름이 용문인 저수지로, 물을 막는 댐이었던 것이다. 용으로 변하지 않아 실망했으나 주위에 발전한 도시를 보고 흥분하며 기뻐한 잉어들은 할머니와 다른 잉어들도 이곳에 와서 살자고 한다는 이야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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