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링의 세계애니메이션] 중국 15
‘문화대혁명’(1966~1976)의 십 년은 중국 역사상 전대미문의 참담한 세월이었다.
‘문화대혁명(이하 문혁)’은 중국 전역에 장기간 동안 혼란과 파괴를 가져왔으며 문화, 예술계에 퇴보를 가져왔다. 이는 전체 예술계 발전에 큰 장애가 되었는데, 영상계는 특히 그 타격이 더욱 심했다.
1966년부터 1972년까지 전국 영화 창작과 영화 생산은 전면적으로 철저하게 통제돼 거의 모든 영화제작소가 정지명령을 받거나 해산하게 됐고, 애니메이션도 예외는 아니었다.
‘문혁’이 애니메이션계에 끼쳤던 영향은 置朗?보면 4가지로 줄일 수 있다.
[b]문화대혁명, 중국 애니메이션계에 찬물 끼얹다[/b]
첫 번째로 이미 제작된 작품의 비판이다. ‘문혁’ 이전 애니메이션은 신화, 동화, 민간 전설 등의 다양한 소재로 제작됐으나 이 시기에 와서는 이런 소재가 ‘반혁명적’인 내용이라 하여 전혀 만들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1964년 상하이에서 시작된 ‘사청(四淸)’ 운동으로 인해 이전에 만들었던 <목동>, <금빛 우렁>, <공작 공주> 등의 우수한 작품이 ‘계급 조화론’ 과 ‘무차별 세계’를 이야기 한다고 하여 비판을 받았다.
현재 1960년대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천궁대소동>은 당시 가장 비판을 많이 받은 작품 중 하나로 1962년 <천궁대소동상>은 TV방영으로 좋은 평을 받았으나, 1964년 이후에 만든 <천궁대소동>은 1966년 ‘반사회주의’ 작품으로 여겨져 ‘문혁’ 이후에나 방영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중국적 특색의 퇴색이다. 중국 애니메이션은 1920년 말에 시작되어 1966년 이전까지 약 40여 년의 세월을 보내왔다. 그동안 많은 실험과 노력 끝에 찾은 중국적인 특색들이 ‘문혁’ 10년 동안 ‘옛 것은 좀?계급의 것으로, 모두 깨끗이 비워야 한다’는 주장 아래 전혀 사용할 수 없어 점점 퇴색돼 갔다.
세 번째 촬영 방법의 간섭이다. ‘문혁’ 기간 동안 ‘사인방(四人幇)’은 영상 제작 과정에도 간섭을 했는데, 작품 안에는 반드시 영웅과 적이 나와야 하고, 영웅이 나올 때에는 항상 정면으로 나와야 하고, 어떤 화면에서든지 중앙에 위치해야 했다.
적은 항상 뒤, 또는 측면에 있어야 했다. 이런 지도층의 간섭은 중국 애니메이션계에 악영향을 끼쳐 촬영 기술 발전을 방해하는 요인이 됐다.
마지막으로 생산량의 저하와 내용의 단순화를 들 수 있겠다. ‘문혁’ 10년 동안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은 모두 17개 작품 정도가 된다. 기존에 있던 유능한 감독들은 비판을 받기가 일쑤였고, 작품 소재에 대한 제한도 너무 심했다.
만들어진 작품의 심의도 너무 강해 애니메이션 생산량은 급격히 낮아졌고, ‘계급투쟁’과 ‘혁명의 개념’을 위한 내용이 아니면, 허가를 받을 수 없었으므로, 이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의 내용은 모두 한결 같고 어린이들이 보기에는 부적당한 내용과 화면들이 가득했다.
[b]제작방법 화려했으나 사상에 가려지다[/b]
이 시기의 새로운 제작 방법은 ‘수묵 담채 지엔즈피엔(水墨淡彩剪纸片)’으로 ‘문혁’ 이후에 본격적으로 사용된다. 주요 작품을 제작 방법 순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지엔즈피엔(剪纸片) 기법 중에서는 <소리 나는 화실>을 들 수 있다. 1974년 상하이 제작소에서 만든 작품으로, 소련의 변화하는 사회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이외 주요 작품으로는 <동해병사>, <출발 전>, <금색의 기러기> 등이 있다.
수묵담채 지엔즈피엔의 대표작으로는 <집에 자란 대나무>가 있다. 감독은 후진칭(胡進慶)으로, 1976년 상하이 제작소 작품이다. 남매가 사는 집에 남동생이 집에 대나무 싹이 자라는 것을 보고, 자신만 이 사실을 간직하려고 하다가 이런 행동이 반혁명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누나에게 이야기한다는 내용이다.
무오우피엔(木偶片) 중에서는 <작은 팔로군>이 대표작이다. 집단 창작 작품으로, 1973년 상하이 제작소에서 만들어졌다. 항일 전쟁 시기 중국 공산당의 교육으로 어린이가 용감한 팔기 부대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다. 이외의 무오우피엔 작품으로는 <날으는 준마>와 <음모> 등이 있다.
셀 애니메이션 기법으로는 <방학 이후>가 대표적이다. 감독은 엔딩센(严定宪)으로, 1972년 상하이 제작소에서 만들어진 혁명 투쟁에 관한 이야기다. 이밖의 작품으로는 <작은 손> 등이 있다.
[b]잠깐 전문 상식[/b]
[b]문화대혁명[/b] 정식 명칭은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Great Proletarian Cultural Revolution/GPCR),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이다.
중국공산당 주석 마오쩌둥(毛澤東)이 중국 혁명정신을 재건하기 위해 자신이 권좌에 있던 마지막 10년간(1966~1976)에 걸쳐 추진한 대격변.
중국이 소련식 사회주의 건설노선을 따라 나아갈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자신의 역사적 위치에 대한 우려 때문에 마오쩌둥은 역사의 흐름을 역류시키기 위해 사상 유례없는 노력을 기울여 중국의 여러 도시를 혼란상태로 몰아넣었다.
사청운동(四淸運動)도 그 중 하나. 마오쩌둥이 1963년부터 실시한 사회주의 교육운동으로 정치, 경제, 조직, 사상 등을 깨끗이 하는 것을 뜻한다.
[b]사인방(四人幇)[/b]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부주석 왕훙원(王洪文), 정치국 상임위원 겸 국무원 부총리 장춘차오(張春橋), 정치국 위원인 장칭(江靑), 원위안(姚文元) 등 반당집단(反黨集團) 4인이 1974년부터 1975년까지 사인방(四人幇)’을 결성한다.
이들은 저우언라이(周恩來)를 중심으로 한 원로 무산계급 혁명가들을 대대적으로 공격하고, 당중앙을 총괄하고 있던 덩샤요핑(鄧小平)의 일상적인 업무를 반대하여, 당권과 국가 최고권력을 탈취하려고 모의했다.
그리고 계속하여 북경 제1차 천안문사건의 유혈진압에 적극 개입하였다. 그 후 직접 상하이로 내려가서 그의 직속 하에 있는 무장조직을 결성하여 상하이 민병(民兵) 폭동을 획책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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