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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 산업은 어디로 갈 것인가? (6) - [사회를 보면 문화가 보인다 (9)]1990년대 일본 사회와 오타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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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09-07 00:00 조회 4,17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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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 산업은 어디로 갈 것인가? (6)
[사회를 보면 문화가 보인다 (9)]1990년대 일본 사회와 오타쿠의 변화

1980년대에 이은 1990년대 오타쿠와 그들의 문화를 살펴보기 전에 이번 글에서는 1990년대 일본 사회가 맞이한 근본적인 변화를 한번 짚어보고자 한다. 오타쿠가 만들어 낸 그들만의 문화는 결코 일본사회와 동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신화의 붕괴, 1990년대
1990년대 일본을 상징하는 단어는 무엇일까? "장기불황", "버블경제 붕괴", "회사 신화의 종언", "잃어버린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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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이 얼마나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었는가를 상징하는 것과 같은 책이다
이들 단어는 하나같이 파국과 깊이 관련된다. 즉, 1990년 일본은 국민들에게 큰 시름을 안겨준 시기였다. 1980년대 일본은 지칠줄 모르고 성장을 거듭했다. 미국과 영국정부가 엄청난 대일 무역적자에 놀라 일본 엔화에 대한 평가절상으로 경제적 제동을 걸었다.(1984년 1달러당 244엔이었던 엔화는 1985년 160엔으로 평가 절상됐다)

엔화의 평가절상으로 무역 흑자규모가 상당히 줄어들었고, 일본정부는 경기위축을 우려해 금리를 대폭 인하한다. 이런 일본정부의 정책은 지금까지 일본 내 축적돼 있던 무역흑자를 더욱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했다.

증가된 무역흑자들은 부동산과 주식투자, 동남아 금융권에 대한 대출 등으로 사용됐고 실제 가치보다 가격이 높게 책정되는 버블(거품)현상을 불러일으킨다. 당시 일본에서는 이런 과열경기 속에 금가루를 탄 커피라던지 연간 수 천 만엔씩 하는 골프 클럽 회원권이 불티나게 팔렸다.

지금까지의 글을 읽어 온 독자라면 쉽게 알 수 있듯이 1980년대 오타쿠 시장의 급격한 팽창과 각종 오락산업의 확장도 이같은 과열 경기로 만들어진 결과 중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비정상적인 과열경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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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주가 지수와 물가 지수를 보여주는 그래프. 1990년을 기점으로 경기가 얼어붙고 지가가 엄청나게 폭락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 종신고용 신화의 붕괴와 사회 불안의 확산

과열경기의 붕괴는 극적으로 이뤄졌다. 1990년대가 시작되는 시점에 주가는 전년 대비 약 50% 정도 폭락했다. 어마어마한 수준을 자랑하던 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1991년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끝없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동남아시아 금융 투자도 예상을 밑도는 수익률을 기록하며 투자 회사에 치명적인 타격을 끼쳤다.

이는 고스란히 일본 기업의 막대한 손실로 나타났고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던 일본 은행과 대기업, 부동산 회사, 금융 회사들이 줄줄이 도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업들은 자구책으로 일본형 회사 체제인 종신 고용체제(회사에 입사하면 죽을 때까지 해고없이 사원을 책임지는 가족형 기업 경영체제)를 포기했다. 대규모 인력감축인 "리스트라"(구조조정을 뜻함)에 착수했다. 회사 이익을 위해 목숨바쳐 온 사원들을 냉정하게 등떠밀기 시작한 것이다.

회사와 은행의 연이은 도산은 소비감소와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졌고 또다시 수많은 회사와 기업들이 도산하는 계기가 됐다. 일본은 다시 공황상태에 빠져버렸고 다양한 자구책을 내놓았지만 어느 것 하나 신통한 효과를 보지 못했다. 결국 10여년에 걸친 저성장 장기 불황 터널에 접어들게 됐다.

일본 버블 경제 붕괴는 매우 의미있는 사건이다. 당시의 경제 불황은 단순 경제 불황이 아닌 1945년 일본 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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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신 고용 기반이 무너지면서 구조조정의 희생자가 된 직장인의 자살이 폭증하였던 것도 1990년대이다
이후부터 일본을 실질적으로 지배해 온 내셔널리즘인 회사 중심주의의 붕괴이기 때문이다.

50년간 국방과 외교문제에 등 돌린 채 회사 지상주의를 바탕으로 살아온 일본과 회사가 제공하는 안락한 보호막(종신고용) 안에서 살아가기만 했던 일본인들에게 갑자기 이 회사가 무너져내렸으니 그 충격은 오죽했겠는가.

당시 일본에서는 ‘중앙선 자살’이라는 용어가 유행할 정도로 불안정한 사회상을 보여준다. 일본 회사 밀집가를 관통하는 전철 중앙선에서 해고 된 회사원들이 다수 자살했다. 회사가 인생의 전부였던 이들에게 회사에서 쫓겨나는 것은 사실상 인생의 끝을 의미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확산되는 오타쿠 커뮤니티

그러나 오타쿠 사회는 이런 보편적인 일본 사회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회사가 붕괴하고 경제가 불안정해지면 오타쿠들도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치열한 경쟁 사회로 돌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라 모두들 예상했다. 필자 역시 2000년대 초반 썼던 칼럼을 통해 이같이 진단했었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이런 1990년대의 혼란을 거치면서 오타쿠 커뮤니케이션은 더욱 확장되며 오히려 일본 사회의 표면에 깊이 뿌리내렸다. 50년간 "우리 방식이 옳다"고 생각하고 일본식 체제를 고집해 온 보통의 일본인들이 "우리가 틀렸을 지도 모른다. 다른 나라의 사고 방식이 옳을 지도 모른다"고 자기 모습을 뒤돌아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오타쿠들만의 생각과 세상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1995년에 벌어진 세가지의 사건인 "오옴 진리교의 지하철 독가스 테러사건"과 "한신 대지진",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발표"를 중심으로 일본 사회가 직면한 변화와 이에 따른 오타쿠 커뮤니티의 확산에 대해 알아보겠다.

출  처 :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충남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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