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리와 포뇨 ‘공존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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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01-06 00:00 조회 3,841회본문
지난 크리스마스 아침, 티브이에서 다시 돌아온 둘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21년 만의 복귀라는데, 여전히 꼬장꼬장한 목소리가 창창한 고길동 아저씨와 둘리 악동들은 외모만 살짝 변했을 뿐 성격이나 행동은 그대로였다. 이제 2009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그들을 만날 수 있다니 감개무량하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2009년 첫날에는 극장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벼랑 위의 포뇨>를 어린이들과 함께 보았다. 소스케라는 다섯 살 난 남자아이와 그 아이를 좋아해서 사람이 되고 싶은 물고기 여자아이 포뇨의 이야기를 환상 동화적인 필치로 그려낸 만화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답게 이국 정취가 보이기는 하지만, 주인공들 이름이 일본인인 것과 섬의 풍경을 보건대 <이웃의 토토로> 다음으로 현재의 삶에 가까운 작품이 아닐까 한다. 둘리와 포뇨, 만든 시기는 각각 다르지만 두 애니메이션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들이 아무런 위화감 없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 일억 년 전 옛날로부터 공룡이 와서 평범하게 치킨, 라면과 오징어를 먹으면서 사람들과 함께 산다. 물고기가 사람이 되었다는데 소스케의 엄마는 별로 놀라지도 않고 햄을 넣은 라면을 끓여준다.
이 만화 속 세상에서는 일상 속에 판타지가 예사롭게 존재하고 있고, 이를 보는 어린이들은 있을 수 없는 공존에 어색한 이음새 따위는 느끼지 않고 또 다른 세계를 회의 없이 받아들인다. 둘리는 여전히 초능력 내 친구고 포동포동 포뇨는 손 잡고 함께 웃는다. 해를 넘는 이때, 우연이라고는 해도 이 두 아이가 거의 동시에 우리를 찾아온 것은 의미심장하게 여겨진다. 하나의 세계 안에서 두 번째 세계를 건설하는 판타지는 일상과 유리되어 있지 않다. 내가 지금 발붙이고 있는 현실과는 다른 세상이 있을 수도 있다는 열린 마음이 빙하기에 사라진 공룡을 21세기 한국으로 불러오고 바닷속의 물고기에 손과 발을 달아준다. 상상력이라고 할 때는 머릿속 이미지를 언어나 다른 외부 매체로 재현해내는 힘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존재가 찾아왔을 때 의심이나 배척만으로 대하지 않고 자연스레 포용할 수 있는 능력까지도 포함한다. 둘리와 포뇨는 낯설지만 친근한 판타지로, 일상과 병행할 수 있는 상상력의 실현이다. 판타지 소설의 거장 톨킨은 <페어리 스토리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판타지의 기능을 회복과 탈출, 위안이라고 하였다. 힘든 때, 인간들과 함께 살아가는 둘리와 포뇨는 우리의 현실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함으로써 위로를 주는 아이들이다.
흔히 겪는 세상의 사실과는 약간 달라도 그 현실에 적용되는 일관성을 발휘해서 비일상성과 새로움을 상상하게 하는 힘을 준다. 새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바로 이 상상력일 것이다. 여러 세계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 상상력, 그러기에 나와 다른 존재를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상상력. 이 상상력이 일상에서 판타지를 만들고, 그로 인해 상처에서 일어서고 현실의 억압에서 벗어나며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만화 같은 얘기라고 할지 모르지만, 언제나 유쾌한 상상이다.
기사출처 : 언론재단
그로부터 일주일 후, 2009년 첫날에는 극장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벼랑 위의 포뇨>를 어린이들과 함께 보았다. 소스케라는 다섯 살 난 남자아이와 그 아이를 좋아해서 사람이 되고 싶은 물고기 여자아이 포뇨의 이야기를 환상 동화적인 필치로 그려낸 만화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답게 이국 정취가 보이기는 하지만, 주인공들 이름이 일본인인 것과 섬의 풍경을 보건대 <이웃의 토토로> 다음으로 현재의 삶에 가까운 작품이 아닐까 한다. 둘리와 포뇨, 만든 시기는 각각 다르지만 두 애니메이션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들이 아무런 위화감 없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 일억 년 전 옛날로부터 공룡이 와서 평범하게 치킨, 라면과 오징어를 먹으면서 사람들과 함께 산다. 물고기가 사람이 되었다는데 소스케의 엄마는 별로 놀라지도 않고 햄을 넣은 라면을 끓여준다.
이 만화 속 세상에서는 일상 속에 판타지가 예사롭게 존재하고 있고, 이를 보는 어린이들은 있을 수 없는 공존에 어색한 이음새 따위는 느끼지 않고 또 다른 세계를 회의 없이 받아들인다. 둘리는 여전히 초능력 내 친구고 포동포동 포뇨는 손 잡고 함께 웃는다. 해를 넘는 이때, 우연이라고는 해도 이 두 아이가 거의 동시에 우리를 찾아온 것은 의미심장하게 여겨진다. 하나의 세계 안에서 두 번째 세계를 건설하는 판타지는 일상과 유리되어 있지 않다. 내가 지금 발붙이고 있는 현실과는 다른 세상이 있을 수도 있다는 열린 마음이 빙하기에 사라진 공룡을 21세기 한국으로 불러오고 바닷속의 물고기에 손과 발을 달아준다. 상상력이라고 할 때는 머릿속 이미지를 언어나 다른 외부 매체로 재현해내는 힘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존재가 찾아왔을 때 의심이나 배척만으로 대하지 않고 자연스레 포용할 수 있는 능력까지도 포함한다. 둘리와 포뇨는 낯설지만 친근한 판타지로, 일상과 병행할 수 있는 상상력의 실현이다. 판타지 소설의 거장 톨킨은 <페어리 스토리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판타지의 기능을 회복과 탈출, 위안이라고 하였다. 힘든 때, 인간들과 함께 살아가는 둘리와 포뇨는 우리의 현실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함으로써 위로를 주는 아이들이다.
흔히 겪는 세상의 사실과는 약간 달라도 그 현실에 적용되는 일관성을 발휘해서 비일상성과 새로움을 상상하게 하는 힘을 준다. 새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바로 이 상상력일 것이다. 여러 세계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 상상력, 그러기에 나와 다른 존재를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상상력. 이 상상력이 일상에서 판타지를 만들고, 그로 인해 상처에서 일어서고 현실의 억압에서 벗어나며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만화 같은 얘기라고 할지 모르지만, 언제나 유쾌한 상상이다.
기사출처 : 언론재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