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단장 ‘건청궁·태원전·규장각·관덕정’ 2009년 일반에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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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8-12-17 00:00 조회 3,611회본문
건청궁·태원전(경복궁), 규장각(창덕궁), 관덕정(창경궁).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궁궐 4개 전각에 대해 내년부터 시민들에게 개방한다고 밝혔다.
이들 전각은 그동안 문화재 보호·관리 차원에서 일반 관광객의 출입이 금지됐었다. 경복궁 한 곳만 해도 수십 채의 건물이 있지만 일부는 발굴 중이고 일부는 내부 수리 중이다. 문화재청은 특정 건물의 발굴과 수리가 마무리가 되는 대로 관람객이 볼 수 있는 동선을 짜고, 관리방안을 만든 후 연차적으로 관람 할 수 있는 전각을 확대해나가기로 했다. 이번에 속살을 드러내는 이들 전각은 어떤 곳일까.건청궁은 경복궁이 중건되고 5년이 지난 고종 10년(1873년) 지어진 건물. 왕과 왕비가 한가롭게 쉬기 위해 지어졌다.
경복궁에서 가장 북쪽 한적한 곳에 있으며 앞에는 향원지라는 큰 연못을 파고 연못 가운데 정자를 꾸몄다. 건물은 민간 사대부 집의 형태를 따르면서도 화려하고 섬세한 치장을 했다. 왕이 사용하는 장안당과 왕비가 머무는 곤녕합, 그리고 장안당 뒤에 서재로 관문각을 지어서 마치 사대부가의 사랑채 안채 서재를 연상시킨다.담장은 벽돌을 이용해서 아름다운 꽃무늬로 꾸몄다. 고종은 이곳을 좋아하여 왕비와 함께 자주 머물렀다. 그러나 한가롭게 휴식할 목적과는 달리 이 건물은 조선 말기 정치적 혼란의 장소가 되고 말았다. 고종은 이곳에서 미국 영국 러시아 등의 공사들을 접견하면서 여러 정치적 현안을 처리해야 했다. 그 사이에 서재인 관문각은 러시아인에 의해서 2층 벽돌 건물로 개조되기도 하였다.
궁 안에 최초로 전등이 설치된 곳이기도 하다. 1895년 일본인들이 궁궐을 습격해서 명성황후를 시해한 곳은 이 건물 곤녕합의 옥호루였다. 이 사건 이후 건물은 한동안 방치되었다가 철거됐고, 2006년에 와서 다시 옛 모습대로 복원되었다.경복궁 태원전은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모시던 건물로 20세기 초에 철거되었다가 옛 모습대로 복원되었다. 궁 안 외진 곳에 있어 한적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고종은 태원전 재실인 공묵재에 머물면서 신하를 만나보는 일이 많았다. 건물은 단정하고 엄숙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창덕궁 규장각은 정조가 즉위한 1776년 만들어져 국립도서관의 기능을 했던 곳이다. 역대 국왕의 시문, 친필의 서화 등을 보관 관리하던 독립된 기구다. 창덕궁에서도 가장 경치 좋은 곳인 후원 주합루 2층에서 보면 어수문(魚水門)이 보인다. 어수문은 말 그대로 "물고기와 물의 문"이라는 뜻으로 임금을 물에, 신하들을 물고기에 비유하여 군신은 서로 융화하는 관계라는 의미다. 주합루 아래층에 조선왕실의 족보·서책을 보관하고, 경전과 역사를 토론하던 규장각이 있었다.창경궁 관덕정은 춘당지 뒤쪽 작은 정원에 자리 잡은 정자다. 인조 20년(1642년)에 취미정(翠微亭)이란 이름으로 창건됐으나 현종 5년(1664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정면 1칸 측면 1칸에 팔각지붕으로 된 정자 건물로 화강석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웠으며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다.
기사출처 : 국민일보
이들 전각은 그동안 문화재 보호·관리 차원에서 일반 관광객의 출입이 금지됐었다. 경복궁 한 곳만 해도 수십 채의 건물이 있지만 일부는 발굴 중이고 일부는 내부 수리 중이다. 문화재청은 특정 건물의 발굴과 수리가 마무리가 되는 대로 관람객이 볼 수 있는 동선을 짜고, 관리방안을 만든 후 연차적으로 관람 할 수 있는 전각을 확대해나가기로 했다. 이번에 속살을 드러내는 이들 전각은 어떤 곳일까.건청궁은 경복궁이 중건되고 5년이 지난 고종 10년(1873년) 지어진 건물. 왕과 왕비가 한가롭게 쉬기 위해 지어졌다.
경복궁에서 가장 북쪽 한적한 곳에 있으며 앞에는 향원지라는 큰 연못을 파고 연못 가운데 정자를 꾸몄다. 건물은 민간 사대부 집의 형태를 따르면서도 화려하고 섬세한 치장을 했다. 왕이 사용하는 장안당과 왕비가 머무는 곤녕합, 그리고 장안당 뒤에 서재로 관문각을 지어서 마치 사대부가의 사랑채 안채 서재를 연상시킨다.담장은 벽돌을 이용해서 아름다운 꽃무늬로 꾸몄다. 고종은 이곳을 좋아하여 왕비와 함께 자주 머물렀다. 그러나 한가롭게 휴식할 목적과는 달리 이 건물은 조선 말기 정치적 혼란의 장소가 되고 말았다. 고종은 이곳에서 미국 영국 러시아 등의 공사들을 접견하면서 여러 정치적 현안을 처리해야 했다. 그 사이에 서재인 관문각은 러시아인에 의해서 2층 벽돌 건물로 개조되기도 하였다.
궁 안에 최초로 전등이 설치된 곳이기도 하다. 1895년 일본인들이 궁궐을 습격해서 명성황후를 시해한 곳은 이 건물 곤녕합의 옥호루였다. 이 사건 이후 건물은 한동안 방치되었다가 철거됐고, 2006년에 와서 다시 옛 모습대로 복원되었다.경복궁 태원전은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모시던 건물로 20세기 초에 철거되었다가 옛 모습대로 복원되었다. 궁 안 외진 곳에 있어 한적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고종은 태원전 재실인 공묵재에 머물면서 신하를 만나보는 일이 많았다. 건물은 단정하고 엄숙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창덕궁 규장각은 정조가 즉위한 1776년 만들어져 국립도서관의 기능을 했던 곳이다. 역대 국왕의 시문, 친필의 서화 등을 보관 관리하던 독립된 기구다. 창덕궁에서도 가장 경치 좋은 곳인 후원 주합루 2층에서 보면 어수문(魚水門)이 보인다. 어수문은 말 그대로 "물고기와 물의 문"이라는 뜻으로 임금을 물에, 신하들을 물고기에 비유하여 군신은 서로 융화하는 관계라는 의미다. 주합루 아래층에 조선왕실의 족보·서책을 보관하고, 경전과 역사를 토론하던 규장각이 있었다.창경궁 관덕정은 춘당지 뒤쪽 작은 정원에 자리 잡은 정자다. 인조 20년(1642년)에 취미정(翠微亭)이란 이름으로 창건됐으나 현종 5년(1664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정면 1칸 측면 1칸에 팔각지붕으로 된 정자 건물로 화강석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웠으며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다.
기사출처 : 국민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