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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어디에도 없는 최초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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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7-05-17 00:00 조회 3,7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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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어디에도 없는 최초의 ‘얼굴’
[명작후일담_2] <홍길동>의 신동헌 감독
‘한국 최초의 장편애니메이션’. 신화는 때론 휘황한 옷을 입고, 무성한 이야기들을 피워냈다. 세인들은 앞다퉈 추켜세웠지만 실은 다시 가라면 차마 못 갈 길이라 그는 고백한다. 그래도 마음 한쪽을 차지한 뿌듯함은 그를 평생 지키고 있다. <홍길동>으로 한국애니메이션 첫 생명의 씨앗을 뿌린 신동헌 감독을 만났다.

쓰레기통 속에서 피어난 ‘한국 최초의 장편 만화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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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이 탄생 40주년을 맞았다

“장편 만화영화 한 번 만들어봅시다.” 신동헌 감독이 당시 메이저 영화사였던 세기상사로부터 제안을 들은 것은 1965년.

유명한 ‘진로소주’ 시리즈 등으로 1960년부터 CF애니메이션계에서 명성을 쌓아온 그는 선뜻 제안을 받아들였다. 만화가, CF애니메이션 감독 등으로 일해왔지만 진짜 하고픈 일은 장편 애니메이션이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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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헌 감독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은 선생의 친동생인 고 신동우 화백이 당시 소년조선일보에 연재중이던 <풍운아 홍길동>. 아우의 ‘홍길동’을 가져오긴 했지만 신 감독은 만화영화라는 특성에 맞춰 그 자신이 캐릭터를 새로이 그려내고 전체 구성도 손을 봤다.

“유소년이 주 대상인 만화영화는 스토리가 뚜렷해야지. 영국 ‘로빈훗’과도 닮은 ‘홍길동’은 ‘의적’이라는 소재가 좋았어. 그 안엔 활극이 있고, 모험이 있으니까. 원작이 최초의 한글소설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지. 무엇보다 선악이 뚜렷한 <홍길동>의 이야기구조가 애니메이션화하기에 적합했어.”

열의와는 달리 상황은 좋지 못했다. 셀애니메이션의 기본인 셀마저 구하기가 쉽지 않던 시절. 선생은 미 공군 촬영 필름을 두루마리째 시장에서 싸게 얻었고, 양잿물에 하루를 재워 감광막을 지우곤 그 위에 그림을 그려넣었다. 그나마도 ‘비닐카’라는 셀 전용 물감이 없어 일반 ‘포스터 컬러’로 색을 칠하는 통에 촬영 때면 색이 바래고 일어나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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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의 원작이었던 고 신동우 화백의 <풍운아 홍길동>
“시행착오도 많았고, 막판 보름 정도는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수면부족으로 서로 신경이 날카로워 싸우기까지 했지. 정말 고생이 많았지만 고생으로 생각하지 않았어. 우리가 맨처음 장편 만화영화를 만든다 하는, 그런 긍지가 있었거든. 그런데 지금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아.(웃음)”

전문적인 지식은 고사하고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40여 명의 사람들을 한쪽에서 가르쳐가며 진행한 작업이다. 처음 완성된 10분간의 필름은 마음에 들지 않아 폐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를 동원한 배경음악, 선녹음 방식, 이중촬영 등의 당시로서는 첨단이라 할 수 있을 방식을 도입, 1년간의 작업기간을 거쳐 12만 5300장의 그림을 최종 완성했다.

개봉일인 1967년 1월 21일. 새벽까지 작업에 시달렸던 신 화백과 스탭들은 누적된 피로에 막상 개봉 당일엔 쓰러져버릴 수밖에 없었는데 개봉관을 찾은 사촌 형으로부터 “대한극장이 터질 것 같다”는 말이 전해졌다. 교통순경 기마대가 동원돼 교통대란을 막아야 할 정도였다. 개봉 4일만에 10만 관객이 들었다. 개봉일로부터 딱 보름 동안 걸렸던 필름은 당시 실사영화까지 포함한 순위에서 당당히 2위를 차지했고, 그해 비 극영화 부문 대종상을 수상했다.

“인간적인 따뜻함과 ‘손맛’ 잃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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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4일만에 10만 관객이 드는 등의 쾌거를 거둔 <홍길동>
그러나 선풍적인 인기에도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오히려 빚 뿐이었다. 극장주들은 약속한 수익은 고사하고 제작비조차 돌려주지 않았다. 속편격으로 6개월만에 극장에 다시 내건 <호피와 차돌바위>를 끝으로 신 감독은 마침내 영화판을 뜨자고 생각했고, 다시 CF와 방송용 애니메이션을 찍으며 빚을 갚아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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